어느새 가을입니다. 사계(四季)중 하나는 는 태양이 지나는 길을 네 등분한 한 귀퉁이련만 어째서 이리 짧은지요. 지난 해에 가을은 사람에게는 빨리 오되 자연에게는 늦게 온다고 적었던 바 있으나 도시에서 살고보니 그렇지도 않습니다. 매미 울음소리에 게으른 잠을 못 다 이뤄 짜증을 내곤 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으나 이젠 홀로 지내는 새벽녘에 귀뚜라미가 먼저 찾아오니 긴 팔을 챙겨입기 전에도 가을인 것을 알겠습니다.
오늘 따라 날씨가 더 쓸쓸합니다. 해는 말갛게 떴지만 같이 놀아줄 구름도 없고 바람만 찰 뿐입니다. 하늘은 높은데 살찔 말은 없으니 천고마비라 부르기도 어색합니다. 빌딩 숲은 좀처럼 노을에 물들지도 않으니 가을은 더 쌀쌀하기만 합니다. 이처럼 외로운 계절이 또 어디 있을까요. 습기도 없이 퍼석퍼석해서, 나무들과 꽃들에게 이제 그만 자라라고 윽박지르는 가을은 포근한 봄과는 사뭇 다른 것 같습니다.
여름의 습기에 질려 삼개월을 살았더라도 가을이 되면 가끔 그 습기가 그리워지곤 합니다. 건조한 날씨에 자다가 목구멍이 말라붙어 잠을 깨면서 가습기를 사야하나, 하고 진지한 고민을 할 무렵이면 더욱 그렇습니다. 하나 둘 챙겨야하고 신경써야 할 것은 늘어나는데 귀찮다고 내버려 두고 살다 보면 불청객이 나타나 강요하게 마련입니다. 어차피 해야 할 일들인데, 늘 호되게 당하고서야 비로소 몸과 마음을 움직입니다. 슬슬 여름 옷을 넣고 가을 옷을 꺼내야 하는데.. 귀찮다고 조금 참다보면 감기에 걸려서 겨울 옷도 꺼내는 지경에 이르게 되지요. 지인분 중에 벌써 감기로 고생하시는 분이 생겼으니 가을을 탓해봅니다. 저도 자고 일어나니 목이 칼칼하더군요. 이를 경계로 삼아 조금 더 부지런 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인생의 갈림길에 선 계절입니다. 이 갈림길은 내년 봄을 마주하고서야 끝이 보일 만큼 아주 길고도 먼 길입니다. 이정표도, 길잡이도 없이 홀로 택하고 홀로 걸어야 하는 길입니다. 생각해보니 많은 벗들께서도 이미 홀로 걷고 있거나 곧 홀로 걷게 되실 것 같네요. 그 길이 비록 외롭고 힘들지라도 포기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산에 난 길림길 처럼 애초에 목적지가 정해져 버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길을 가며 행한 많은 것들이 목적지에 다다라야 보이는 그런 길이기 때문이지요. 갈림길은 영원히 멈추지 않을 선택의 연속이고, 그런 선택이 스스로를 지치게 만들겠지만, 일어서야 합니다. 有朋自遠方來하니 不亦樂乎라(벗이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이 역시 즐겁지 아니한가. - 논어.) 하였는데, 여기서 모쪼록 모두 무릎을 꿇으면 제겐 놀러갈 벗이 없어지는 것이고 벗들께도 놀러갈 벗이 사라지는 것이니 서운할 일이지요. 무릇 벗이란 친구의 슬픔을 짊어지는 자라 했으니, 길 가는 짐을 서로 나누어 웃으며 걸을 수 있도록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감기 조심하시지요. 꿈꾸는 자에게만 기적이라는 결과가 찾아온다는 것을 생각하는 조용한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