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스, 또 다른 나를 찾아서.
I. 서설
딥스는 자아를 찾은 것이 아니다. 딥스 자신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고 딥스의 자아 역시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들 나를 찾는다고 이야기 하지만 그 본래의 ‘나’는 자신의 안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자아를 찾았다는 딥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의 소제목은 사실 어디에도 없는 자아를 딥스가 만들어냈다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찾지 못했고 딥스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이미 형성되어 있던 숨겨진 자아의 위치를 찾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질문은 딥스의 자아가 왜 숨어 있었는가에 대해서 초점이 맞춰져야 옳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딥스의 자아가 왜 숨어있었는가와 그 숨은 딥스의 자아를 찾아 탐험한 버지니아 액슬린과 딥스의 노력에 대해서 정리해 보고자 한다.
II. 딥스가 가진 아픔.
책의 간단한 설명에서 밝혔듯 딥스는 몰이해와 몰인정으로 인해 상처받은 아이었다. 정신질환 분류기준인 DSM-IV에 따라 분석해보자면 정신분열도, 자폐증도, 어떤 성격장애도 아닌 듯하다. 각각의 질환이 대표적으로 나타내는 증상을 보이지 않고 있을뿐더러 흔히 말하는 주의력 결핍 증후군 (ADHD)도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애정을 어떻게 주어야 하는지, 따뜻한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부모를 둔 이유 때문에 지적인 성취능력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정서적인 장애로 인해 그 능력이 저해 받고 있는 평범한 아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부모는 딥스를 지진아라고 쉽게 단정 짓고 방치했다. 그것이 그들이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명석한 지능을 가지고 있는 부모였으나 지능만으로는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거나 해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른 어떤 존재보다도 더 사랑과 수용과 이해를 필요로 하는 어린아이에게 끊임없는 거부와 의심과 시험만을 퍼부었으니, 딥스가 황폐해질만도 하다. 아마도 딥스의 부모 자신들이 살아오면서 정서적으로 만족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딥스에게 사랑과 존경, 이해를 줄 수 없었을 것이다.
원숭이조차도 젖을 주는 쇠로 만든 엄마 원숭이 모형보다는 젖은 나오지 않지만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털이 복슬복슬한 엄마 원숭이 모형을 찾아간다. 마음을 가진 모든 생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다. 정서적인 안정감과 유대감, 이해심과 친절함이 무엇보다 아이의 자아를 형성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그것들을 부모로부터 모두 얻을 수 없었던 딥스의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것이었으리라.
III. 액슬린 선생님의 해결책 1 - 격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칭찬은 아이를 망칠 수도 있다. 지나친 칭찬은 오히려 아이가 나아갈 방향을 정해버리는 몰이꾼의 역할, 즉 제한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 최근의 연구 결과에서 밝혀졌다. 캐롤 드웩은 자신의 연구결과에서 지적 능력에 대한 어느정도의 칭찬은 필요하나 그것이 발전 가능성을 막고 좌절감을 키울 수 있다고 밝혔다. 과도한 칭찬을 받은 아이는 그 칭찬을 계속 받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고 다만 현상 유지에 관심을 가질 뿐이며 더 어려운 문제를 푸는데 소극적이라고 말했다. 도전과 실패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실패는 ‘똑똑하다’라는 칭찬을 받을 수 없는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칭찬이 아닌 격려이다. 딥스가 무언가에 대해서 정리하여 말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어떤 현상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액슬린 선생은 ‘잘했다’라는 칭찬을 하지 않았다. 다만 그것이 대견하다는 듯 ‘너는 그것에 대해 알게 되었구나’라고 격려할 뿐이었다. 이런 격려는 아이의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는다. 칭찬을 위해 춤추는 고래는 동물일 뿐이다. 칭찬은 말 앞에 놓인 당근처럼 앞으로 달려가게만 한다. 그러나 격려는 아이가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스스로 결정하게 만든다. 칭찬은 춤추게 할 뿐이지만 격려는 춤추게도 할 수 있고 노래하게도 할 수 있으며 말하게도 할 수 있다. 이것이 칭찬과 격려와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모든 것을 일일이 돌봐주면 자존감이 저하되어 안정감을 찾는 힘이 떨어진다. 액슬린 선생의 ‘격려’는 딥스가 스스로 내적인 힘과 가능성에 대해 신뢰를 가지게 한 가장 큰 무기라고 할 수 있겠다.
IV. 해결책 2 - 이해(반영)와 명료화
액슬린 선생이 딥스를 처음 만났을 때, 딥스는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시하지 못했다. 다만 좋아하거나 싫어한다는 표현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자아가 형성 되었으나 자아가 가지는 감정을 스스로 이해하지 못했고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이것은 감정표현에 서투른 부모에게 전적인 원인이 있다 하겠다. 아이의 감정표현에 대한 학습은 아이의 행동에 대한 부모의 반응을 아이가 지켜보고서 배우는 피드백 과정에 의해 이뤄지는데 부모로부터 올바른 감정표현을 받지 못한 아이는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투르게 되고 똑같은 행동에 대해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부모 때문에 양가감정을 가져 정신분열로 발전할 수도 있게 된다.
이러한 딥스의 감정을 느끼고 딥스 자신으로 하여금 감정에 대해 잘 알 수 있게 해준 액슬린 선생의 무기는 바로 이해와 명료화라 하겠다. 우리는 흔히 애들이 뭘 아느냐는 태도로 아이를 대하곤 한다. 그러나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은 헛소리가 아니다. 다만 잘 표현할 수 없을 뿐 아이도 성인이 느끼는 감정을 똑같이 느낄 수 있다. 액슬린 선생은 이런 점을 간파하고 딥스의 감정을 이해하여 딥스로 하여금 그 감정을 스스로가 천천히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좀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고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딥스는 제대로 된 문장을 구사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정확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V. 해결책 3 - 개방식 질문
딥스의 부모는 딥스의 능력을 시험하고자 언제나 정답이 있는 질문만을 던졌고 딥스가 정답을 말해주기만을 원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답만을 바라는 질문은 칭찬과 마찬가지로 어린아이의 가능성을 제한한다. 어른들이 원하는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틀 안에 아이를 가두면 아이는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없게 된다.
보다 열린 질문은 아이의 사고력과 창의성을 증대시킨다. 어떠한 질문에 대해서 어른들이 바라는 정답을 말하지 않던 딥스는 아예 대답 자체를 거부한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강제로 시킬 때 몹시 화를 냈고, 다만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는 책만을 가까이 했을 뿐이다.
이에 액슬린 선생은 아동들의 놀이치료에 흔히 이용되는 도구인 개방식 질문을 이용한다. 개방식 질문은 어른들에게는 무척 혼란스럽고 바보 같은 질문처럼 보일 수 있다. ‘정답’을 말할 수 있는데 ‘생각’을 말하라는 것은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비효율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방식 질문은 아동들의 사고력을 넓혀주고 가능성을 열어준다. 질문에 대해 질문으로 대답해서 정답이 아닌 딥스 자신의 생각을 이끌어내고, 어떠한 현상에 대한 딥스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지식을 알 수 있게 된다. 아이들의 모든 행동 속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고, 이 이유를 알아내서 아동의 눈높이에서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큰 무기가 바로 개방식 질문이라 하겠다. 이를 통해서 딥스는 좀 더 자유로운 사고와 감정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노래를 지어 부르기도 하였다. 딥스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능성을 이끌어 낸 것이다.
VI. 결론
액슬린 선생은 딥스의 자아를 찾아내지 않았다. 위에서 밝힌 것들을 도구 삼아 딥스 스스로가 자신의 자아를 찾아 탐험하도록 도와준 것뿐이다. 자아는 자신을 능력 있는 사람으로 느끼고, 자신의 인생은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원초아와 초자아 사이에서 그 둘을 조절하는 자아는 원초아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과 능력, 초자아가 가지고 있는 책임감과 도덕성의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딥스는 자신의 가치와 자신의 책임감을 배웠고 마침내 자아를 찾아냈다. 딥스는 작고 미숙하고 겁 많은 아이를 크고 안정되고 용감한 - 그래서 감정을 이해하고 그것들을 조율할 만한 힘을 갖게 된 - 자아의 개념으로 바꾸었다. 이것이 딥스가 액슬린 선생의 도움을 받아서 찾아낸 자아의 본질이라 하겠다.
우리는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있다고들 말한다. 프로이트는 이것을 욕망하는 원초아, 억압하는 초자아, 그리고 이들을 중재하는 자아라고 말했고, 본능과도 가까운 원초아나 초자아 보다 주변 환경과 반응하여 생겨나고 힘을 얻기도, 잃기도 하는 자아에 초점을 맞췄다. 우리가 말하는 또다른 나의 중심은 바로 ‘자아’인 것이다. 딥스가 보여준 처음의 자아는 힘없고 약한 자아였다. 부모로부터 애정을 받지 못했고 올바른 피드백을 받지도 못했으며 심지어 그를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화를 내거나 침묵하거나 했던 딥스의 자아는 초자아와 원초아의 다툼을 반영하는 거울일 뿐이었다. 자신을 잃는 다는 것이 어린아이에게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까. 그러나 딥스는 그 어두운 시절로부터 벗어나 자신이 인생의 그늘과 양지를 잘 수습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발견할 기회, 자신이 가진 내재된 힘으로 주위를 둘러싼 환경을 변화시키고 초라하고 약한 자아가 아닌 강하고 당당한 자아를 가지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격려와, 이해와, 명료화와, 반영 그리고 개방식 질문이라는 무기를 가진 저자 덕분에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