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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만에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기쁨의 눈물도, 슬픔의 눈물도, 또한 감동의 눈물도 아니었다. 내 삶의 숲의 어디엔가 두고 온 내 꿈이 생각나서 문득 눈물을 흘렸다. 어느덧 스물 여섯. 꿈이라는 단어와 멀지도 않지만 멀어져야 하는 나이다. 나 자신과 인생이란 무엇인가와 세상에 대한 걱정은 접어둔 채,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조차도 접어둔 채 법전과 책에 매달린지 어언 8개월. 삶에서 맛본 가장 큰 실패와 함께 몸도 마음도 망가졌고 덕분에 온갖 약과 통증 속에 살고 있다. 잠시 쉬는 거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타이르고 있지만 욕심 때문인지 욕망 때문인지 하루하루가 불편하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꿈이 사치라는 것을 알아버린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까.
 
  만학의 길을 걷고 계신 어머니께서 레포트가 버거워 아들에게 도움을 청하셨다. 덕분에 아동심리학의 고전이라는 딥스도 읽어보고,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고 wish list에만 올려두었던 장영희 교수의 글도 읽고, 지금은 인생수업이라는 책과 함께 있다. 내가 한동안 책을 읽지 않은 것은 내 숨어있는 욕심을 자꾸 자극하기 때문이었다. 쥐뿔 아는 것도 없으면서 욕심만 많아가지고 책장에 책은 계속 늘어만 가지만 그 책들을 하나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내가 읽을 책은 민법과 민사소송법, 특허법과 상표법 같은 책이 오직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도 내가 꾸는 꿈 중의 하나라고는 하지만 지금 내가 말하는 꿈은 장래희망같은 것이 아닌, 내가 열 일곱살에 꿈꾸던 그런 꿈이다. 스물 다섯살이 되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무슨 글을 쓰고 있을까, 책은 하나 낼 수 있을까 하는, 지금 생각해보면 얼토당토 않은 그런 꿈 말이다.

  그래서 문학의 숲을 거닐다 라는 책은 내게 매우 위험한 책이라고 생각했다. 문학과는 너무 먼 길을 걷게 되었고, 문학을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환경이 안되기도 했고, 능력이 모자라기도 하다..) 나에게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마치 위염환자에게 초콜릿을 먹이는 것 처럼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어쩌랴. 어머니의 레포트를 위한다는 빛깔 좋은 구실로 나는 그렇게 금단의 열매에 손을 대고 말았다.

  첫 챕터를 읽으며, 눈물이 쏟아졌다. 그녀는 문학을 하고 있었다. 문학의 숲을 거닐면서 그녀 역시 문학의 숲을 이루는 한 주체였다. 나는 가지 못할 그 숲을, 나는 갈 수 없었고 그 일부가 되지도 못할 그 숲에,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내 젊음과 내 두 다리를 부러워 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녀가 가고 있는 길이 너무 부러웠다. 장영희라는 세 글자만으로도 세상은 그녀가 쓴 글을 바라봐주지 않는가. 나는 이렇게 어중이 떠중이 같이 문장도 문맥도 지저분한, 막돼먹은 글을 쏟아내듯이 뱉곤 하는데, 그녀는 작은 일상에서 홈즈와 셰익스피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떠올리며 인생을 음미하듯, 꿈을 꾸듯 그렇게 글을 쓰고 있었다.

  버리고 다 버려도 꿈은 남는다 했던가. 이루고 다 이뤄도 꿈은 이룰 수 없다 했던가. 잠깐의 시간 동안, 장자가 낮잠을 자며 나비가 되었듯이 나도 책을 읽는 동안 그녀이고 싶었다. 그래서, 내 인생의 숲속 작은 오솔길 어딘가에 슬그머니 풀어두고온 꿈이 생각나,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도 없는 그 작은 오솔길이 생각나서 오랫만에 책을 읽다가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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